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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영국생활

(영국유학) 내가 골드스미스를 관둔 이유-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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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국유학을 관둔 이유



 수업이 아닌 실제로 자신이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인 Studio Practice는 어떠할까. 사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Critical Study를 제외한 모든 대학에서의 시간이 Studio Practice이다. 학생들은 책상 하나의 작은 공간-약 180cm*90cm-을 배정받는다. 필자같이 부피가 꽤 나가는 조각을 주로 하는 학생들이나, 큰 페인팅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최악의 공간이다. 자신의 작업을 할 공간도 부족한데, 이미 만들어 놓은 작품을 보관하기까지 해야 한다니. 공간이 너무나도 좁기 그지없다. 게다가 누군가가 스프레이를 뿌리기라도 한다면 그 작업실에서 나가야 할 정도로 환기시설이 엉망이다. 덤으로 작업실은 학생카드가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생이 문을 열면 누구나 덤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라 보안 또한 잘 되어있지 않다. 실제로도 많은 학생들이 도난된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찾는다는 이메일을 많이 받곤 한다.


열악한 작업실 환경과 대조되게, 학생들이 자신의 작업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킬 수 있는 workshop의 시설은 퍽 나쁘지 않다. 테크니션들 또한 숙련자들로, 웬만한 나무나 철은 자르고 붙일 수 있는 설비를 지지고 있으나, 재료값은 학생의 몫이며 값이 교외와 비교해보았을 때 꽤 비싼 편에 속한다. 학생으로서의 작품을 만드는 데에는 어찌어찌 기준치에는 들어맞으나, 작가급의 작업을 하기에는 부족한 설비들이 많다.

 좀 더 작품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각 학교마다 추구하는 예술 스타일이 있듯이, 골드스미스는 학생들에게 critical 하고 political 한 작품을 요구한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작품에 대하여 큰 뜻: 세간의 이슈나 특정한 사상, 사건, 의견을 비판하거나 동조하기를 기대한다. 오브제를 본인의 철학과 여러 요소들의 고려 없이 만들고, 그 후에 결과물이나 과정에 큰 정치적 의미를 찾고자 한다. 마치 학생이 한 명의 무명 프로테스탄트가 되기를 원하듯이 말이다.

또한 교수진에도 문제점이 보인다. 교수진들은 한 명의 professor을 제외하고 21명 모두 시간제 강사인 tutor로 되어있다. 이들은 학교와 temporary contract로 맺어진 관계이므로 튜토리얼을 제외하면 학교에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연락 속도가 더디며, 언제나 튜토리얼을 받을 수 없으며(한 학기에 두 번 개인 지도, 한 번 단체 지도를 받는다) 튜토리얼을 받더라도 자신의 작업과 연상되는 작가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최선의 지도이다(왜냐하면 이 튜터들은 나의 철학과 작업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변해가는지 모를뿐더러 알아갈 기회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은 학년이 시작하기 전, 튜터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만 실제로 본인이 희망하는 튜터에게 배정받기는 힘들며, 자신의 작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튜터가 개인 튜터로 되기도 한다. 이가 심각한 이유는, 예술이 점수를 내릴 수 없는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작업 방식이 전혀 다른 튜터에게 점수를 받게 되는 현상에 있다.

골드스미스의 기대와 달리 아쉽게도 프로테스탄트와는 거리가 먼 필자는 과학(주로 천문학, 생물학, 지질학과 약간의 화학)과 인간의 불완전/ 불안정함에 관심이 많다. 얼마 전, 두 명의 튜터와 튜토리얼을 한 필자는 골드스미스의 Studio Practice에도 문제점이 많음을 인지하였다.

첫 번째의 튜터는 나의 작품에 긍정적이고 열린 자세로 받아들였으나, 내게 이렇게 물었다. '작품을 만들 때, 본인의 생각만으로 작업을 하는가 또는 그 밖의 요소들을 작업에 투영하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작품에 세간과 관련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아니다. 그러나 본인은 political 한 의견에서 작업을 시작하지 않기에 작업에 대하여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튜터는 필자의 개인 튜터였는데, 첫 번째 튜토리얼에 부득이한 이유로 불참하게 되어 사과와 다른 날에 튜토리얼이 가능한지 메일을 보냈다. 개인 튜터는 한 달이 지난 후에서야 다음날 아침 10시 40분에 튜토리얼을 하겠다고 연락해왔다. 그리고 튜터는 11시 10분이 되어서야 내 작업실에 도착했다. 그녀는 오자마자 사과보다는 다른 학생에게 문자를 먼저 보내고 시작하겠다고 했다. 결국 나의 튜토리얼은 11시 15분부터 시작되었다. 개인 튜터는 얼마 되지 않는 튜토리얼 내내 부정적이고, 내 작품에 대하여 전혀 알려고 하질 않았으며, 심지어 내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할 때 말을 끊기까지 했다. 실로 학생을 가르치는 튜터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뭐, 물론 골드스미스의 모든 튜터들이 그녀와 같이 사무실도 없는 시간제 강사이니 학생에 대한 무지와 무책임한 행동의 출처는 불 보듯 뻔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내게 아는 작가가 누구 있냐고 물어봤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질문 타이밍과 대화의 질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 질문의 목적은 나를 시험하는 데에 있었다. 나는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거장 작가들의 이름을 열거하였고, 튜터는 이에 '좀 덜 현대적이다 Quite not contemporary' 라고 대답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학생들이 이미 성공한 거장 작가들에 대한 무지와 함께 과연 성장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현대적'인 예술에 대해 나와 큰 입장의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마치 내가 젊은 무명 퍼포먼서를 애증 하며 그의 오마주를 해야 한다는 듯했다. 그녀는 예술을 과도하게 fantasising 하고 있으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작품이 팔리지 않아 가난해도, 작품에 정치적 문제를 시사해야 하는 것이 예술가라는 편견이 짙게 깔려있었다.

정리하자면, 나는 철학을 하고 싶은데 골드스미스는 내가 정치적 의견을 내길 원한다. 그들은 내게 거장이 아닌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따라 하길 원한다. 그들은 예술을 과도하게 fatasising 한다. 예술가는 모두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작업실에서 외로이 예술혼을 불태우며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있다. 

 그 외에 학교 주변의 시설이 굉장히 열악하다.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카페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먹을 만 한 식당이 도저히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은행 또한 없다. 오로지 밥을 먹기 위해, 또는 은행에 가기 위해 학교를 벗어나 그 먼 시내로 나가는 일도 빈번하다. Fine art과가 유명한 학교인 만큼, 학교 주변에 많아야 할 미술관련 시설들은 아예 존재하질 않는다. 학생들이 현 작가들의 전시를 감상할 수있는 갤러리나 박물관도 없으며, 그렇다고 학생들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공공적인 장소는 학교 근처에는 없을 뿐더러 그렇다고 학교가 학생들의 전시를 지원해주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해외국적의 학생들은 영국이나 유럽연합의 학생들보다 두 배 더 비싼 학비인 £19420를 내야 한다. 그게 무려 한화 삼천만원에 육박한다(최근 브렉시트로 인해 파운드가 폭락해서 이 정도지, 전에는 삼천육백만원이 넘었다). 물론 이 금액은 대학과정 4년 중(파운데이션 포함) 1년분이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영국국적이나 유럽국적의 학생들에게는 많은 장학금제도가 있는 반면, 해외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은 커녕 학생대출도 불가능하다. 내는 학비는 영국 내에서 제일 비싼 축에 속하는데, 설비나 지원의 질은 그야말로 바닥을 긴다. 그야말로 학위장사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너도나도 유학을 갈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하지만, 진정 유학이 본인의 미래에 득인지 실인지를 날카롭게 판단한 후에 유학의 길을 선택해야만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다고 말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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